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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석상이 가져온 비극

DaCon 2017. 12. 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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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은 고립된 섬이었는데, 고립되다다 보니 (자기네들끼리만 살아야 했기 때문에)교역이 어려웠고, 내부 경쟁도 치열했다고 합니다.



이스터섬 사람들은 거대한 석상인 모아이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모아이를 분석한 결과 상징적인 석상이 아닌, 과시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거대한 돌을 옮기는 것은 인력과 돈, 그리고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시용으로 충분했다고 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약 15km)채석장에서 바닷가까지 일주일이면 석상을 옮길 수 있었는데, 약 오십 명에서 오백 명 정도가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옮겼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기찻길처럼 길을 만들어 카누를 얹은 후, 카누에 석상을 얹고 밧줄로 묶어 당기는 '카누 방식'이 유력한 가설 중 하나라고 합니다.



당시 이스터섬 사람들은 (권력, 재력)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너도나도 경쟁)모아이 석상을 폭발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 과도한 경쟁으로 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아이 하나를 만들 때마다, (밧줄, 카누)나무가 너무 많이 사용하면서, 이스터섬에 있는 나무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아이가 보통 (600년 동안만)1000년부터 1600년 사이에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때는 경제 활동이 좋아서 인구도 점점 늘어난 것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1600년 정도 되면서부터는 희한하게도 당시 사람들의 주식이었던 돌고래 뼈가 발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나무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큰 카누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고, 큰 카누가 없으니 먼 바다에 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나무가 없어지면서 비나 빗물에 의해 땅이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나무, 땅, 식량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스터섬은 급속도로 황폐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쓸데없는 욕심)모아이를 세우지 않았다면, 그들의 역사는 다르게 쓰였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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