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2

세종대왕, 이순신 동상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광화문 광장의 상징이자 초등학교마다 곳곳에 있었던 세종대왕 동상. 그러나 세종대왕 동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동상마다 세종대왕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의 어진(초상화)이 전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동상마다 모습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1973년 정부는 위인들의 모습을 통일하기 위해 표준영정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표준영정을 지정하게 되었는데, 세종대왕과 이순신 표준영정을 그린 화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광화문 지킴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도 쉽게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동상을 보면 오른손에 칼집이 쥐어진 것을 확인할 수..

이슈거리 2017.09.02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가장 아겼던 부하 '무의공 이순신'

임진왜란 영웅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 시절 방답첨사로 첫 인연을 맺은 이첨사는 임진왜란 당시 활약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중위장으로 수십 대의 적선을 격파했고 뛰어난 활쏘기 실력과 명석한 두뇌를 가져 이순신 장군의 신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이순신 장군과 사적으로도 가까웠던 이첨사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할 때에도 가장 먼저 찾아와 위로를 건넸다고 합니다. 1598년 11월 백의종군을 끝내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이첨사와 함께 노량해전에 출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 의해 전사하고 마는데, 이때 조선 수군은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라는 이순신 장군의 뜻을 이어 결사항전한 끝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량해전이 끝난 후 선조는 이..

밀러터리 2017.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