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11

[옥탑방의문제아들] 추신수가 생각하는 메이저리그행 가능성이 높은 선수 2명

추신수 선수는 한국에서 야구를 하면서, 메이저리그에 갈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투수 안우진과 타자 이정후를 꼽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이정후 선수 같은 경우는 자신의 나이때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완성이 되어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도 야구를 하고 있는데, 특히 첫째는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야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워낙에 좋은 신체조건을 가졌고, 벌써부터 공을 보는 선구안 능력까지 있어서 장래가 기대되는 선수라고 하네요

스포츠 2023.01.20

[라디오스타] 김병헌이 생각하는 법규가 나오게 된 과정

김병헌은 메이저리그에 있었을 당시, 폭탄 발언은 물론 손동작(법규)으로 많은 논란이 되면서. 김병헌은 그런 성격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사실은 숫기가 없어서 말도 잘 안 했고, 실제로 팀이 이기거나 질 때도 기뻐하거나 화를 내는 등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 그런 김병헌의 모습을 보고 한 동료가 '너는 좋은 동료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동료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팀이 졌으면 화도 좀 내고, 이겼을 때는 정말 기뻐도 하는 등 동료로서 감정적인 교류를 하길 바랐던 것이라고 합니다. 김병헌도 그때 많을 걸 느껴서 감정 표현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법규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이슈거리 2023.01.08

[라디오스타] 김병헌이 언더핸드로 던지게 된 계기(ft. 시위)

본론에 앞서,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인 김병헌은 위로 던지는 오버핸드 투구법과 달리, 아래로 던지는 언더핸드 투구법으로 핵잠수함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한국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였다고 하는데요 본론으로 들어가, 언더핸드로 던지게 된 계기는 과거 1988년 시위가 많이 일어났던 금남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당시 시위가 한창일 때 주변에 돌이 있어서 장난으로 던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시위를 하던 형들이 잘 던진다고 해서, 계속 돌을 던졌는데 이때 위보다 아래로 던질 때 더 멀리 나간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원래는 오버핸드였지만, 더 멀리 나가는 언더핸드로 완전히 투구폼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슈거리 2023.01.08

'법규형' 김병현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성기 짧았던 이유

김병현은 야구인생에서 자신의 전성기가 짧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전성기 때처럼 나오지 않는 실력 때문에 늘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존심도 바닥날 정도로, 부진을 겪자, "야구를 하면서 내가 이 원인은 꼭 찾고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원인을 찾은 결과, 여러가지 이유 중 잘못된 식습관이 큰 영향이 끼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진출하다 보니 (식습관 등 생활환경에 적응)피자나 햄버거를 아무 생각없이 먹었다고 합니다. 즉, 그때 관리를 못한 것이 원인이었는데, 그래서 김병현은 한 2년 반 정도를 고기를 안 먹어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야구공을 던지는 순간, 시야도 또렷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스포츠 2019.07.15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스포츠스타 2세' 9인

1. 차범근-차두리 차범근은 80년대 분데스리가를 휩쓴 전설적인 공격수로, 국내는 물론, (유럽, 아시아 등)해외에서 더 존경받는 축구인라고 합니다. 차범근에게는 (딸1/아들2)3명의 자녀가 있는데, (모두가 잘 알듯)그중 장남이 '차미네이터' 차두리 전 국가대표팀 코치라고 합니다.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아버지와 같이 독일에서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축구인 중에서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2세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이끈 신태용 감독의 아들 '신재원' 선수가 있고, '월드클래스' 손흥민 역시, 아버지가 80년대 상무 축구단, 현대 호랑이, 일화 천마 등에서 활약한 (유소년 지도자)손웅정 감독이라고 합니다. 2. 이종범-..

스포츠 2019.03.07

이종범이 아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행'을 반대하는 이유

본론에 앞서, 이정후 선수는 '종범신' 이종범의 아들이자, 차후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는 '야구 천재'라고 합니다. 발전속도가 빠르다 보니 '메이저리그'에 대한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이종범은 아들의 메이저리그행을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도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을 수 있으나, (높은 연봉, 큰물에 흔들려서)무턱대고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스타일도 중요한데, 이정후는 홈런을 많이 치는 장타형보다는 '단타형'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은 미국보다 일본이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외진출을 한다면 "일본 무대가 맞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참고로 이정후에게 바람을 넣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정..

스포츠 2019.01.04

투수의 컨디션이 너무 좋으면 안 되는 이유(ft. 류현진)

본론에 앞서, 야구를 보면, 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성적이 크게 반영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투수 포지션은 컨디션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류현진에 따르면, 타자는 컨디션이 좋을 때 안타나 홈런을 칠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투수는 타자와 반대로 컨디션이 좋으면 오히려 더 못 던진다고 합니다. 만약 투수가 컨디션이 너무 좋으면, "당연히 못 칠 거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이런 생각 때문에 타자와 정면 승부를 걸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안타나 홈런을 맞게 되기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몸 상태나 컨디션이 안 좋아야 더 긴장하게 되고 집중도 더 잘하게 된다고 합니다.(ⓒ 무릎팍도사 류현진인스타그램)

이슈거리 2018.09.28

'야구 유망주' 서장훈이 농구로 종목을 바꾼 이유

본론에 앞서, 서장훈이 어렸을 때 '프로야구'가 개막하면서 온 동네 아이들이 전부 야구에 빠졌었는데, 서장훈 역시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야구부에 들어가 경기도 잘 나갔을 만큼 야구에 재능을 보였는데, 더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집에서 멀었지만)야구 명문 중학교로 진학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먼 학교를 다니다 보니 친한 사람도 별로 없고, 매일 혼자 따로 노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야구부의 규율, 군기가 정말 심해서 체벌 시 '야구 방망이'로 맞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어린 서장훈은 이런 것들이 싫어서 친구들이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었는데, (다른 학교 야구부 전학..

이슈거리 2018.06.03

운동선수가 돈을 따라가면 안 되는 이유(feat. 이종범)

이종범은 1998년 6월 일본 진출을 한지 얼마 안 됐을 시점에 팔꿈치 골절상이라는 큰 부상을 겪었는데, 그때 느낀 감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야구는 물론, "스포츠는 돈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게 어떤 의미냐면, 당시 도루를 하면 구단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루 20개를 성공하면 2,000만 엔(약 2억 원)이 지급되고, 한 개를 추가할 때마다 100만 엔(약 1,800만 원)이 추가 지급이 됐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종범은 "잘만 하면 금방 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욕심이 앞서게 되었는데, 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유 역시 무리한 출루를 시도하다 다친 것이라고 합니다. 부상 이후 전성기 때로 돌아가지 않은 타격폼과 상대 투수들의 집요한 몸 쪽 견제 때문에 공에 대한..

이슈거리 2018.02.07

이종범이 출루에 강한 우투좌타 대신 우투우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은 선수 시절 (오른손으로 던지고, 오른손으로 치는)우투우타로 활동했는데, 이종범이 우투우타로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본론에 앞서, 우투우타보다 우투좌타가 출루에 굉장히 유리한데, 베이스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른쪽보다 왼쪽에서 달릴 때 약 3m 정도가 더 빠르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이종범이 (출루에 유리한)우투좌타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1979년 3월)야구를 시작했던 당시에는 야구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왼손 글러브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야구는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했기 때문에, 글러브를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신문지나 비료포대로 글러브를 손수 제작해 야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환경..

이슈거리 201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