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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가려진 세계 최초의 국제 공용어 '에스페란토'

DaCon 2016. 11. 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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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후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150km 떨어진 비알리스토크는 신흥 방직업 도시로 러시아계, 폴란드계, 유대계, 독일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잦은 분쟁을 겪었는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폴란드의 치과의사인 자멘호프는 이러한 적대감과 분열의 원인이 언어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87년 7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정치적 중립적인 국제 공용어 발표했는데, 이 인공 언어는 자멘호프의 필명(평화)에서 따온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다양한 유럽언어의 장점만으로 모아 만든 에스페란토는 문법에 예외나 불규칙이 없고, 어순이 바뀌어도 상관없는 등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국민끼리는 모국어 쓰고, 다른 민족끼리는 공통어 쓰자는' 1 민족 2 언어주의'를 주장하며, 강대국의 언어가 다른 나라 소수 민족의 언어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평화적 발상이었다고 합니다.


(에스페란토를 상징하는 깃발. 녹색은 희망 흰색은 평화와 중립을 뜻하고 별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다섯개 대륙을 상징)


에스페란토는 이렇게 좋은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탄생 초창기부터 억압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치 치하의 독일은 자멘호프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에스페란토로 인한 유대인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했고, 이런 이유로 홀로코스트 기간에 수많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학살했으며, 1935년에는 에스페란토를 법적으로 금지했다고 합니다. 반면 구소련의 최고지도자 스탈린은 직접 에스페란토를 공부했을 정도로 세계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1인 독재를 위해 대숙청을 벌이는 동안 에스페란토를 스파이의 언어로 지칭해 1956년까지 에스페란토 사용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단 몇 시간 만에 에스페란토 익혔다는 일화로 유명했고,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와 미국의 백만장자 조지 소로소도 열렬한 에스페란토 사용자였다고 합니다. 1920년대 우리나라에도 조선에스페란토 협회가 창립되는 등 지식인들로부터 에스페란토 운동이 활발이 전개됬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에스페란토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00만 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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