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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아머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DaCon 2017. 9. 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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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20년 만에 연 매출 5조 원을 돌파한 언더아머는 2014년 아디다스를 제치고 미국 내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스포츠용품 브랜드라고 합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지배하던 미국 스포츠용품 시장에 진출해 2015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TOP 10에 들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더아머의 창업자 케빈 플랭크는 대학 미식축구 선수 시절 유독 많은 땀으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연습 후 땀에 젖은 티셔츠의 무게를 측정했더니 원래보다 1.4kg이나 증가한 사실을 알고 "이너웨어가 왜 이렇게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프로 입단 대신 이너웨어 제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케빈 플랭크는 1996년 우연히 여성 속옷 재질의 합성섬유에서 힌트를 얻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내 원단 시장과 봉제 공장을 찾아다닌 끝에 기능성 의류 개발에 성공했는데, 유니폼 안에 입는 갑옷이라는 의미로 '언더아머'라는 브랜드가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언더아머 창업 당시 사람들은 이너웨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케빈 플랭크는 운동선수였던 만큼 선수들의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화려한 디자인과 색감보다도 편리함과 기능에 초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언더아머 마케팅 당시 직접 제품을 만들어 배달하면서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케빈 플랭크는 영업력이 뛰어난 인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발렌타인데이 때마다 장미를 팔아 약 1,900만 원의 자금을 확보했을 정도)



자신의 대학 미식축구팀을 찾아가 견본을 나눠주고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당시 전 미식축구 선수 제프 조지가 언더아머 제품을 입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식축구 후원 이후 야구, 농구 등으로 종목을 확대해 대학, 고교, 프로 순으로 영업망을 확장했다고 합니다.



선수들의 피드백을 철저히 반영해 신제품을 출시한 언더아머는 2006년 창업 10년 만에 신발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풋볼화, 트레이닝 슈즈, 런닝 슈즈, 축구화 등을 차례로 선보였는데, 특히 2010년 농구화 컬렉션을 출시하며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출 확대 이후 스타 마케팅을 시작한 언더아머는 1985년 마이클 조던을 후원하며 급성장한 나이키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언더아머의 전략은 '언더독 전략' 즉,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 또는 선수를 후원했다고 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야구 선수 클레이튼 커쇼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커쇼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매년 각 리그의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 영 상'을 두 차례 수상한 선수로 언더아머는 커쇼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대학 시절부터 후원해 왔다고 합니다.



NBA 최고의 스타 스테판 커리 역시 언더아머의 후원을 받는 농구선수로 유명한데, 언더아머는 2013년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스테판 커리와 연간 약 45억 원에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사실 스테판 커리는 나이키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당시 "스타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계약을 중단한 상태였지만 언더아머는 스테판 커리의 성공을 확신했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NBA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가 된 스테판 커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스테판 커리 컬렉션' 또한 인기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 밖에 무명의 골프선수였던 조던 스피스(2015 PGA 투어 올해의 선수), 발레계에서 흔치 않았던 흑인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아메리칸발레시어터 창단 75년 만에 최초로 발탁된 흑인 발레리나)를 후원하면서 언더아머의 언더독 마케팅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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