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7

'따로부엌' 제주 사람들이 부엌을 따로 썼던 이유(ft. 고두심)

본론에 앞서, 제주도 전통 가옥은 안채(시부모집)와 바깥채(아들-며느리집)가 마주보는 'ㄷ'자 형태로 되어있는데, 신기하게도 부엌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세대별로 구분)같은 시간에 밥을 먹더라도 무조건 따로 썼는데, 그 이유는 제주 사람들의 정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주 사람들은 강인하고 자주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데, 이 정신을 바탕으로, "내 수족이 움직이는 한 자식에게 의탁하지 않겠다"라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제사 역시 형제들이 나눠서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장남은 아버지-할아버지 제사를, 할머니-어머니 제사는 다른 형제들이 지낸다고 합니다.(ⓒ 선을넘는녀석들 부라더)

이슈거리 2019.03.05

제주 한라산 '올레길 9코스'에 대해 몰랐던 사실

본론에 앞서, 제주 한라산은 해안부터 고산까지 다양한 식생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해발 200~600M)2차 초지대는 사람이 만든 식생이라고 합니다. 제주에 2차 초지대가 생긴 이유에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고려시대 당시 '원나라'에 의해 생겼다는 설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당시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고 있었는데, 원은 고려를 직접 통치하기 위해 제주에 '탐라총관부'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원이 제주에 오게 되었는데, 말을 타는 유목민족이다 보니 말을 키우고, 관리해야 될 장소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해발 200~600M까지 불을 질러 초원지대를 확보했는데, 그게 2차 초지대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원은 제주에서 키운 말들을 본국으로 실..

이슈거리 2019.02.26

제주도 해녀에 대해 몰랐던 사실

조선시대 때 제주에서 채취하는 해산물은 대부분 한양의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더 많은 해산물을 바치기 위해서 제주의 백성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매일 가혹한 물질을 견뎌야 했다고 합니다. 사실 해산물을 캐는 일은 주로 포작인이라 불리는 남자의 일이었고, 해녀들은 대부분 얕은 바다에서 미역을 따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역을 견디지 못한 포작인들이 죽거나 육지로 도망가는 일이 빈번해지자, 채취하는 해산물 또한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관리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제주에 남은 여인들에게 포작의 의무를 씌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주의 여인들을 도망가지 못 가게 가두고, 육지 사람과도 혼인을 못 하게 하는 등 섬..

이슈거리 2017.12.19

제주도가 신혼여행의 메카가 된 이유

과거 신혼여행 1순위로 꼽혔던 제주도. 하지만 제주도는 (조선시대 당시)유배지로, 전쟁이 나면 피난지로 인식된 곳이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난한 농촌이었는데, 1980년대 들어와서 (국내 관광객 유입이 시작)신혼여행지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제주도 이전에는 유성 온천, 해운대, 온양 온천, 경주 등으로 많아갔는데, 그러다가 처음으로 '해외'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제주도로 많이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고, 경제도 많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민들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곳은 제주도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신혼여행 때 처음 비행기를 탔으며, 당시 비행기를 탄다는 건 큰 의미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주도는 1980..

이슈거리 2017.11.28

제주도가 텃세가 심한 이유

과거 "제주도는 텃세가 심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 타지방 사람 경계는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편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섬일 경우 육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경계심이 더 강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제주도는 조선시대 유배지로 이용되는 등 역사적으로 한 번도 대우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경계심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당시 벼슬하던 사람들이 유배를 떠났던 지역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 사람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떠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제주 4.3 사건(1948년부터 약 6년간 남북 간의 이념 갈등이 원인이 돼 일어난 사건으로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의 약 10%가 희생)이 일어나면서 육지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매우 깊어졌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제주도에는 끈끈한 유대감을 의미하는 '괸..

이슈거리 2017.11.06

제주도에 해남이 사라진 이유

원래 제주도에는 해녀들이 얕은물에서 미역을 캐고 포작인(해남)이라고 불리던 남자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폭군' 연산군이 엄청난 양의 전복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재촉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관리들 또한 사욕을 채우기 위해 따로 전복을 요구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해남들은 그 일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는 일이 빈번해졌고, 전복을 캐다 익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결국 호마다 부과되면 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녀자들이 바다로 뛰어들게 되었고, 이 아녀자들이 오늘날의 해녀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슈거리 2017.07.01

원래 제주도에는 말이라는 동물이 없었다?

고려 제24대 왕 원종은 몽골 황실을 등에 업고 무신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다고 합니다. 이에 반발한 삼별초(무신정권의 사병)는 무기를 훔치고 일제히 봉기에 나섰다고 합니다. 심지어 왕온이라는 새로운 왕까지 추대해 원종과 몽골에 대항했지만 고려 정부와 몽골 연합군에 패배하면서 세력을 잃어갔고 결국 제주로 건너가 항쟁을 이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별초는 제주를 기반으로 무신정권의 부활과 함께 강력한 해상왕국을 염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273년 여몽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진압당하면서 삼별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별초 진압 이후 원나라는 제주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직접 제주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마전술을 펼치며 대제국..

이슈거리 201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