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5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UFC 챔피언'이 되면 생기는 일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챔피언)무조건 1등을 목표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 챔피언이 되면 제일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욱일기'에 대한 것인데, 외국에서는 욱일기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서, 욱일기를 문신이나, 옷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명 격투기 의류 브랜드'에서도 욱일기 디자인의 옷을 만들었었고, 세계적인 선수인 'GSP'가 욱일기 의상을 입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에 심각성을 느낀 국내 격투기 카페에서는 욱일기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정찬성이 직접 GSP에게 메시지를 남기게 했는데, 그제서야 업체에서도 사과와 함께 "욱일기 의상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을 전했고, GSP도 사과의..

이슈거리 2018.08.25

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한 이유(ft. 골목식당)

'신포시장 청년몰'에서 다코야키를 팔고 있는 다코야키 사장님은, (한손은 기대고)다코야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손으로만 굴리는 모습을 보여 백종원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고 합니다. 한 손으로 하면, 본인은 편할지 몰라도 손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성의 없어 보일뿐더러 "건성건성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다코야키는 두 손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다코야키 특성상 손님 앞에서의 퍼포먼스가 중요한 메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덴돈집 사장님의 경우, 신메뉴 개발 당시 손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보기 위해 일부러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앉아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골목식당)

이슈거리 2018.08.16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 덴돈집이 맛과 별개로 대단한 이유

본론에 앞서, '인천 신포시장 청년몰' (일본식 튀김덮밥)덴돈집은 맛과 청결은 물론, 재료-도구-메뉴까지 일본 현지와 흡사한 구성으로 백종원의 인정을 받은 가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덴돈집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8,000~12,000원 사이)바로 가격대였다고 합니다. 8,000~12,000원의 가격대는 소비자로 하여금 적지 않은 부담을 줄 수 있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손님들이 가격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모습이 안타까웠던 백종원은 "(트레일러 특성상) 가격이 부담스러운데, 튀김 구성을 바꿔서 가격을 낮춰보면 어떻겠냐"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각각의 튀김 맛은 훌륭했지만, 양이 많아서 나중에는 느끼했다"라는 말을 근거로, "양을 줄여도 괜찮을 ..

이슈거리 2018.08.04

일본 스포츠가 '패스'를 중요시하는 이유(ft. 오오기)

일본은 예로부터 혼자서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데, "세 명이 모이면 산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라는 속담도 있다고 합니다. 즉, 개인플레이보다 팀플레이가 몇 배의 효과를 더 거둘 수 있다는 말인데, 일본 스포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축구는 '스시타카'라고 해서 패스를 많이 하는 플레이로 정평이 나있고, 일본 농구 역시 슛 횟수보다 패스 횟수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사실 점유율을 지키는 게 승리의 지름길이 될 수 있겠지만, (치명적인 단점)워낙 팀워크를 중시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하는 선수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항상 마지막 슛은 외국인 선수들이 많이 하는 편인데, 일본 문화 특성상 나서기를 싫어하고, (실패하면 미안해)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이유도 ..

이슈거리 2018.06.27

'광복절' 일본과 중국은 8월 15일을 어떤 의미로 생각할까?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역사적인 날로, 당시 일본이 전쟁에 항복하고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 선언을 한 날이라고 합니다. (광복절에 대해)일본에서는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로 '종전 기념일'이라고 불렀는데, 1982년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념하는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국처럼 큰 행사를 하지 않고 대부분 조용하게 지나가는 편인데, 한국에서 거주하는 일본인들 역시 이 날 만큼은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일본어로도 이야기하지 말자는 인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은 (광복절에 대해)일본이 패망하고, '일본군이 중국에서 철수하게 된 날'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일본과 8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군 200만 명 이상이 중국..

이슈거리 2018.02.08

운동선수가 돈을 따라가면 안 되는 이유(feat. 이종범)

이종범은 1998년 6월 일본 진출을 한지 얼마 안 됐을 시점에 팔꿈치 골절상이라는 큰 부상을 겪었는데, 그때 느낀 감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야구는 물론, "스포츠는 돈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게 어떤 의미냐면, 당시 도루를 하면 구단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루 20개를 성공하면 2,000만 엔(약 2억 원)이 지급되고, 한 개를 추가할 때마다 100만 엔(약 1,800만 원)이 추가 지급이 됐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종범은 "잘만 하면 금방 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욕심이 앞서게 되었는데, 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유 역시 무리한 출루를 시도하다 다친 것이라고 합니다. 부상 이후 전성기 때로 돌아가지 않은 타격폼과 상대 투수들의 집요한 몸 쪽 견제 때문에 공에 대한..

이슈거리 2018.02.07

일본에 흑우가 많은 이유

본론에 앞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우는 사실 토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때는 세조 7년, 오키나와 물소를 들여와 전통 한우와 교배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한우라고 합니다. 사실 토종 한우는 황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칡소, 흑우, 적우 등이 존재했는데, 대부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개체 수가 급감했거나 멸종했다고 합니다. 특히, 제주의 토종 한우인 흑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 징발을 당하면서 개체 수가 급감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675~1872년)약 1,200년 동안 육식이 금지였는데, 이후 육식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맛과 품질이 우수한 제주 흑우를 징발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세종실록을 보면 "제주 흑우는 고기 맛이 우수하여 삼명일(임금의 생일, 동지, 정월 초하루)에 진상품 및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제..

이슈거리 2017.11.13

일본 때문에 사라진 한반도의 동물들

1. 강치 문재인 대통령이 착용해 화제가 된 넥타이가 있었는데, 화제의 이유는 넥타이에 그려진 동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동물은 몸길이 약 1.5~2.5m에 헤엄치기 좋은 지느러미발을 가지고 있고, 약 25년의 평균 수명을 가지고 있는 '독도의 수호신' 강치라고 합니다. 1794년 정조실록 중 "가지도에 가서 보니 가지어 네다섯 마리가 놀라며 뛰어 올라왔다"는 내용이 실려있는데, 실제로 독도에 가지(강치)가 많아 가지도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19세기 초반까지 독도에 약 4만~5만 마리의 강치가 서식하고 있었는데, 1905년 일본의 수산업자 나카이 요자부로가 강치 가죽으로 돈을 벌겠다는 야욕 때문에 독도의 강치를 마구잡이로 포획했다고 합니다. 마구잡이로 포획된 강치 가죽은 가방으로 만들어졌고 심지어 기..

이슈거리 2017.09.04

'일본의 약탈' 고종과 명성황후를 분노하게 만든 문화재 2가지

1. 히젠토 히젠토는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로 현재 일본 후쿠오카 구시다 신사에 기념품으로 보관하고 있는 상태인데, 범죄에 해당하는 증거물을 기념품으로 소유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여우 사냥'이라는 작전명으로 명성황후를 시해했는데, 칼집에 '일순전광자호(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2. 조선 대원수 투구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대원수 투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전기회사로 막대한 부를 쌓은 실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라고 합니다. 왕의 상징인 양 날개와 용 문양이 특징인 조선 대원수 투구는 조선 왕실에서 대대로 사용했던 투구로 고종황제까지 계승된 조선 왕실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이슈거리 2017.08.15

'대호' 멸종된 조선 호랑이가 일본에 있다?

우리나라 호랑이는 현재 역사로만 남아있는데, 시베리아 호랑이에 속하는 호랑이로 개체 중 가장 큰 체구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유해 짐승을 박멸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해수구제정책'으로 호랑이, 늑대, 표범 등의 맹수를 무분별하게 사냥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조선의 얼과 혼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포획했는데, 그 중심에는 일본인 사냥꾼 야마모토 타다사부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1917년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는 함경도 일대에서 조선 호랑이 포획 원정대인 '정호군'을 결성하고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고 합니다. 당시 호랑이 두 마리를 박제했는데, 한 마리는 일본 황태자에게 선물했고 다른 한 마리는 자신의 모교인 도지샤 대학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도지샤 ..

이슈거리 2017.08.15